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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한마디로 행복한 나라입니다. 자유도 열정도 투우도 태양도 모두 그 행복을 규정짓는 구성
요소일 뿐입니다. 그리고 스페인식 행복법은 지금의 우리가 알고 배워두면 좋을 것으로 가득
했습니다
.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축제를 벌여 커뮤니티의 단결을 도모하고 음식을 즐기는 모습, 전통
문화를 소중히 하는 모습, 그리고 여유롭고 느리고 욕심 없이 사는 모습이 바로 그 행복법의 내
용이었습니다. 또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점, 예술과 인생을 사랑하며 주체적으로 살아
가는 모습은 그 행복법의 절정이었고요.



스페인식 행복법의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구별하라는 것입
니다.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시간이 아닌 상대적이고 영원하며 시간 자체를 초월한 카이로스의 시간
을 간직한 나라가 바로 스페인입니다. 크로노스적인 시간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돈의 노예가 되게
하며 자연과 영혼을 파괴합니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이 충만하면 문화는 풍요롭고 초월적이
며 아름답습니다.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함 그 자체이니까요.
스페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시간이 지상으로 흘러 들어온 듯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가득한 삶과 문화 말입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한 여유가 아닌 영적이고 근본적인 여유를 그곳으로
부터 느끼며 스페인에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피카소와 달리, 가우디와 같은 역사적인 천재를 배출한 나라, 검은 황소처럼 힘이 넘치는 열정의
 나라, 신비롭고 관능적인 힘이 용광로처럼 뿜어져 나오는 나라. 다시 잠을 이루려고 해도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콩나물처럼 마른 서울의 사람이니까. 스페인이 그렇게 열기에 넘쳐 나를 휘두르
면 며칠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잠든 친구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쩌면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비록 지금은 이렇게 겁이 나서 무서워하고 있지만 뭔가 내게도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된 걸 거야. 그래도, 가는 거다. 얼떨결에 따라온 지옥 훈련이라고 해도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는 아랑곳없이, 창밖으로는 수많은
별들이 아름다운 모험의 길을 비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이 들어 버린다. 마치 태고의 공기 속 이끼 내음과 수백 만 그루의 나무 향기가
느껴지는 듯한 착각 속에서. 스페인은 정말 강렬한 곳이다. 자다가 방안이 너무나 추워 양말을 신고
 옷을 다 꺼내어 입고 다시 잠이 든다.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치면 내 몸과 마음은 더 강해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지금은 콧물이 흐르고 있지만. 새벽이다. 좀 더 눈을 붙이자.
안 그러면 이 강렬함에 눌려 나 같은 약골은 바로 쓰러진다구!



바닷속 한가운데처럼 고요하고 신비롭다. 우주선에서 바깥으로 나가보는 심정과 흡사한 기분으로
차문을 열어본다. 괜찮은 것 같다. 찐빵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초록빛 화성의 한가운데에 서본다.
갑자기 뜨거운 햇빛과 거대한 구름과 평원이 소음을 일으키며 내 주위로 뻗어나간다. 잠시 동안
나를 흔들고 가는 빈혈. 그리고 적막. 마치 윈도우의 시작 화면 속에 들어온 듯 거대하고 파란 하늘과
 하염없는 초록빛의 초원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태양은 바로 머리 위에서 이글거린다.
하늘이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 정말 아름답다! 넋이 나갈 정도로 고혹적인 풍경과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에 경탄이 절로 난다. 오염된 것이라고는 없는 안달루시아의 초원. 순도 100퍼센트의
태양과 공기와 초원이 뿜어내는 에너지 속에서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햇빛이 뇌를 증발시킨다.
왠지 시원하다. 마치 근육통에 붙이는 파스처럼 뜨거우면서도 시원하다. 땀도 흐르지 않는다.
금세 말라버린다. 이건 가장 상쾌하고 아름다운 꿈이다! 악몽과 아름다운 꿈이 교차하는
안달루시아의 대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본 적이 있었던가?



황금으로 뒤덮인 드높은 제단, 이보다 더 화려한 것은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복잡하고
섬세하고 데코레이티브한 수많은 장식들, 콜럼버스의 집채만한 관, 천장의 끝없는 높이와 아찔한
깊이. 심연. 이것은 성당이 아니라 해일이다! 내가 얼마나 얄팍한 삶을 살았는지 신이 그 거대한
목소리로 꾸짖는 느낌이다. 아, 스페인, 세비아, 안달루시아. 제발 현대병을 앓는 나를 용서하세요.
 영혼이 퇴화된 인간을, 개미처럼 작아진 인간을, 납작해진 영혼을. 나의 작은 존재감을
느끼며 성당을 나온다.
그저 그늘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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